#1. 여기는 감시사회. '나쁜 놈'과 '이상한 놈'으로부터 '착한 놈'을 보호하기 위해 감시망을 가동한다. 나는 평상시 착한 놈으로 불리지만 길게 보면 이상한 놈, 가끔씩 나쁜 놈이 되기도 한다. 겉보기에 착한 놈에서 겉보기에 이상하고 나쁜 놈으로 변신하는 순간 감시 카메라가 번쩍, 찰칵. "진실만을 말해라, 대신 착한 놈이 아니면 말하지 말아라, 착한 척한 이상한 놈이거나 나쁜 놈이면 죽는다." 경고문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2. 말, 글, 노래, 그림, 춤. 나는 말하고 쓰고 부르고 그리고 춘다. 내 말, 내 글, 내 노래, 내 그림, 내 춤이라는 딱지가 붙지만 그 말, 글, 노래, 그림, 춤은 내가 아니다. 나는 말하면서 말을 버리고, 쓰면서 글을 버리고, 부르면서 노래를 버리고, 추면서 춤을 버리려 한다. 원래 내 것이 아니고 이미 내 것이 아닌 말, 글, 노래, 그림, 춤임에도, 내 이름이 걸린 내 재산으로 남는다. 내 말, 글, 노래, 그림, 춤이 인정받거나 높은 가격에 거래되면 내 말, 글, 노래, 그림, 춤이 훌륭한 것인가 아니면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건가.
#3. 그는 참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춤은 보기에 좋지는 않다. 그는 참 이상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때와 장소에 맞추어 좋은 말을 그럴듯하게 참 잘한다. 그는 나쁜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글은 점잖기 그지없다. 그의 말, 글, 노래, 그림, 춤 속에 그의 머리와 가슴과 혀와 눈과 손과 발이, 그의 인격과 가족과 성격이 영원히 투명하게 담겨 있을리 없다. 내가 불가능한 것처럼 그도 불가능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그를 만나고 실망하는 나는 무엇을 왜 기대했던 것일까. 불가능하지만 가능하다고 믿는 것, 마치 가능한 것처럼 작동하는 것, 그런 가상현실이 주는 짜릿함 때문이던가.
$4. 여기는 감시사회. 경고문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가상현실 속에서 나는 '내 것'으로 박제되고, 신 또는 악마로 거듭날 수 있다. 다시 생각해보니 여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컴퓨터를 끄고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세상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