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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올림픽 성화봉송 행사에서 중국 시위대가 행한 폭력 사건과 그에 대한 반응을 보니, 평소 똘레랑스 또는 관용의 덕목을 설파해온 사람들은 중국 시위대의 폭력 사건에 대해 말하기 조심스럽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똘레랑스의 덕목은 나와 다른 사람을 인정하라고 권한다. 그럼, 피해의식과 자존심으로 뭉친 중국 시위대를 향해서도 같은 말을 할 것인가. (폭력에 대해서는 그에 맞는 법을 적용한다고 하면) 중국 시위대에 대한 분노를 그만 멈추라 타일러야 하나. 아마도 그렇게 말하리라. 하지만 이에 그치지는 않으리라. 중국정부와 중국인들의 '중화민족주의'를 우려하고 그 기치 아래 일관되게 배치되는 정책방향을 비판하리라. 그리고 나서 다시 관용을 권한다. 티벳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시오. 그래서 어찌할 것인가. 똘레랑스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할 말은 다 했지만 한 일은 없다. 중국정부와 중국인들이 티벳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찌할 것인가. 계속해서 '중화민족주의'를 내걸고 여기저기서 크고 작게 충돌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관용의 정신으로 뭉친 자유주의자는 이런 식으로 나갈지도 모른다. 불관용의 관용 또는 관용을 위한 불관용. 똘레랑스가 없는 자에게 폭력과 협박으로라도 똘레랑스를 거하게 하라. 어떻게 이 딜레마를 빠져나올건가. 아마 관용의 정신은 불관용의 행동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만들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기대한다. 걱정은 더 이어진다. 2005년인가 프랑스에서 이민 2세들의 방화 사건이 크게 일어난 적이 있었다. 똘레랑스 정신이 사회를 떠받친다는 프랑스에서조차 방화범들을 잡아들여 본 때를 보여야 한다는 극우파들의 목소리가 넘쳐났다. 극우파들에게 방화범인 이민 2세들은 사회를 해치는 폭도였다. 경제가 위축되고 실업률이 증가하며 경제위기 담론이 확장되던 프랑스에서 똘레랑스의 한계는 어디까지였나. 시간이 흘러 남한 사회에서 제삼세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와 그 자녀들, 국제 결혼을 통한 혼혈인, 새터민(북한 탈주민), 중화민족주의로 무장했다는 중국인들, 익숙하지 않은 종교인 등이 돌발적인 사건만이 아닌 구조적인 긴장 관계를 만들어내는 때, 남한 사회에서 똘레랑스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건물과 도로가 파괴되고 국기가 불타오를 때에도 똘레랑스의 정신을 설파할 수 있을까. 그 용기가 순식간에 치솟는 집단적이고 광적인 대응을 완화시킬 수 있을까. 그 용기와 치유가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이 버텨 서도록 힘을 보태줄 수 있을까. 걱정이다.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이택광님의 블로그를 방문하니 이런 글이 올라왔더라. 중국 시위대의 폭력에 대해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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