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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때때로 합리적이거나 비합리적이듯, 사회도 때때로 합리적이거나 비합리적이다. 사회가 합리적인 까닭은 사람들이 합리적이기 때문이 아니며, 사회가 비합리적인 까닭은 사람들이 비합리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은 사회가 합리적인지 여부를 떠나 때때로 합리적이거나 비합리적이다. 사회가 합리적인 까닭은 사람들이 합리적인지 여부를 떠나 복잡하고 불확실한 현실을 단순하게 바꾸어 보여주는 환상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환상에 맞추어 환상이 부여하는 합리성을 체현하려 애쓴다. 사람들이 가끔씩 주어지는 환상에서 한 걸음 벗어나게 될 때마다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말을 듣는다. (지금까지 다양한) 거버넌스 실험 또는 사례를 대하면서, 거버넌스를 보는 관점 또는 말하는 방식은 ‘좋다’, ‘필요하다’, ‘할 수 있다’, ‘해보자’라는 당위에서 ‘좋으냐?’ ‘필요하냐?’ ‘할 수 있냐?’ ‘해야 하냐?’라는 의문으로 바뀌고 있다. 이를 나쁘게 해석하면 덫에 걸려 허우적거리다가 지치거나 냉소적이 된 것이고, 좋게 해석하면 규범적 접근에서 분석적 접근으로 바뀌는 것이다. 통섭(consilience)이라는 말이 있다. 여러 학문 영역들, 특히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통합 가능성을 일컫는 듯하다. 'consilience'라는 단어의 어원 자체만 놓고 보면 ‘함께(con)-뛰기(silience)’로 해석 가능하다. 이질적 학문을 하나로 통합하기보다는, 특정 학문 분야로 규정하기 애매한 문제를 여러 학문분야들이 함께 다루는 것에 가깝다. 다만 함께-뛰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강한 시차(視差, parallax)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고진, 2005). |